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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을 빛낸 25인

티 없으신 성모성심을 통하여 천주성삼께 영광을! 이라는 지표로 관상과 활동을 겸하고 있는 본 수도회는 수도자 양성, 전교사업, 성지개발사업, 의료사업, 복지사업을 펼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김재윤 - 『 25년 전 그 장소에서 그 기억을 되돌아 보다. 』

본문


                                      스토리 주인공 : 김재윤님(성동복지관 개관당시 담당공무원)
                                      스토리  텔 러 : 최성숙 요셉피나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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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윤님에게 성동 25인에 선정되심을 알려 드리려고 전화를 드렸다. 아주 반갑게 전화를 받으시고는 전화 드린 사정을 말씀드리자  25인에 선정된 것은 너무 행복한 일이지만 당신은 그런 자격이 안 된다고 거절을 하셨고 전화 드린 저는 꼭 인터뷰를 해야 할 이유를 다시 한 번 더 말씀 드렸고 당신은 또 거절하시고 하면서 옥신각신(...) 하다가 인터뷰에 응하셨고 인터뷰 할 날짜를 정하였다.(2월 8일)

날짜가 다가와서 전화를 드렸는데 당신 못 하시겠다고 겸손하게 또 거절 하셨다. 저는 안 된다고 꼭 오셔야 하는 이유를 말씀 드렸고 오시면 반가운 얼굴 들을 보실 수 있다는 핑계로 겨우 승낙을 받고 며칠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당일 바쁜 일정으로 일을 하다가 11시에 오셨는지를 확인하자 지금 관장실에 계신다고 하셔서 하던 일을 멈추고 단숨에 올라갔다.


관장실에는 중후한 신사 한분이 단정한 모습으로 관장수녀님과 가예따노 수녀님, 이준구 과장님, 김우현 팀장이 배석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의 꽃을 피우고 계셨다.

26년 전 성동종합사회복지관과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이하 성동복지관 또는 복지관) 건립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김재윤님은 귀한 발걸음을 하셨는데 저희가 드린 질문지 보시고 26여 년 전으로 돌아가셔서 회상 하시니까 감회가 새롭지 않으셨는지요?”

“제가 25인 안에 들어가는 것이 맞는지가 더 고민이 되었습니다.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 당시 복지관 착공과 동시에 지역주민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면서 여러 가지 책임 부담으로 담당자들이 자주 교체(6개월, 3명)되었습니다. 저는 서울시 자치구에서 처음으로 시작하는 구립 장애인종합복지관을 짓는다는 자부심으로 업무를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때 장애인단체들도 현장에 와서 장애인종합복지관이 혐오 시설이 아니라고 시위를 했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까?”

“예, 제 기억으로는 그런 것 같습니다. 착공은 했는데 난감했습니다. 장애인단체는 장애인을 위해 조속히 복지관을 건립하라는 주장과 지역주민은 혐오시설이 지역에 들어오면 안된다는 이유로 전면 건립반대로 구청장님 및 관계자분들의 상심이 참 컸습니다.

그때 구청에서는 공사를 재개하기 위해 생각 끝에 문제 해결 방안을 찾고자 주민들과의 설명회 및 공청회를 여러 차례 하면서 지역주민들(비장애인들)의 욕구를 반영하여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시설(종합사회복지관)을 함께 건립하는 것으로 결정하게 되었고 공사를 재개하였습니다.
그러나 공사재개에서도 장애인시설에 대한 편견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반대가 계속 되었습니다(지역주민들의 마장로 점거 농성과 공사장 현장에 드러눕기 등). 그러나 복지에 대한 욕구와 지역복지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주민들을 설득하면서 공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당초 장애인복지시설이라 2층으로만 설계 된 것을 장기적인 복지수요를 감안해서 6층으로 설계변경하면서 사업추진을 진행하다보니 공사기간이 길어졌습니다.”

 “김재윤 담당님 그때 제가 재단에서 공부 중인 수녀였는데요. 복지관 건립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셔서 열심히 했는데 이런 일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잊지 못할 일은 서울 복지시설을 위탁운영 할 경우에는 천주교의 내부 규정에 의거 사전 서울교구의 협조가 꼭 필요했습니다. 재단과 교구와의 사전 협조가 늦어짐에 따라 구청에서는 난감했습니다, 개관이 지연되고 경제적인 손실은 물론 행정의 신뢰문제도 있는 긴박한 상태였습니다. 사후 협조를 받기 위해서 주교님을 뵈러 수차례 서울교구를 방문하였습니다. 주교님이 출타 중이라는 여러 가지 사유로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최후로 시민과 관계기관과의 신뢰 및 형평, 비용손실 등 당시의 여러 가지 필요성을 들어 협조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여 위탁 운영하는데 협조를 받아낸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공사 시작 1년 6개월 만에 지방자치단체에서 처음으로 사회복지관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종합사회복지관과 장애인종합복지관이 한 건물에 있는 유일무이한 복지시설로...”  

이야기를 하시는 동안 당신의 눈에는 25주년이 된 성동복지관이 너무도 가슴 벅차고 대견스러운 생각으로 가득함이 보였다.

공사추진과 개관 등 당시 여러 가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당신이 하신 일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는 성경의 말씀처럼 당신의 공로를 겸손히 내려놓으시는 모습에 가슴 깊이 울림이 왔다. 

김재윤님께서 조심스럽게 말씀을 이어 가셨다.

“개관 후 개관 시 물품서류를 점검하는데  아! 수녀님들께서 내부품의 등 관련 증빙자료가 미흡(물품을 사시고 영수증 미첨부 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수녀님들이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르는구나.’  그래서 제가 내부품의 작성 방법(영수증뿐 아니라 시장조사 관련 증빙자료)부터 투명하게 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도록 모든 규정들을 알려드렸습니다.


그 후 재점검을 했는데 너무 완벽하고 빈틈없이 관련 자료를 갖추고 운영할 뿐 아니라 지역주민의 욕구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하여 시민들이 무엇이 필요한가를 직접 확인하여 시민 입장에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밤낮으로,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수녀님들의 노력에 놀랐습니다. 한편으로는 상당히 죄송했습니다.”

( ‘김 재윤님, 그때 지도점검 받고 저희는 낮에 근무하고 야근 시 기안 작성하였습니다. 지난 일이지만 참 황당한 일을 저희가 했었습니다. 팀장님! 오늘 다시 한 번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하나 더 말씀 드릴까요? 그 당시에는 제가 성동복지관에 자주 왔었는데 너무 황량한 느낌이 들어서 관장 수녀님께 울타리 펜스에 줄 장미 심는 것을 제안 드렸습니다. 며칠 뒤에 와서 보니까 그때가 4월말 이었는데 5월에 장미가 울타리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감동이었습니다.”

( ‘김 재윤님 저희는 그때 며칠 동안 정말 힘들었습니다. 청계고가 보수공사 처에 가서 아스팔트 커트기를 빌려서 전 직원이 동원 되어서 일부는 아스팔트 커트하고 나머지는 울타리 따라서 장미를 심고 물주고 ...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네요.’)

자리에 함께한 한 명이 김 재윤님에게 성동복지관은 어떻게 다가오는지 물었다.

“제가 지금도 성동복지관 주변을 지날 때 마다 건립당시의 어려웠던 일과 위탁당시 수녀님들과의 업무 협조 등 여러 가지 잊을 수 없는 추억들이 생각이 난다고 하셨다.” 
 이 말씀에서 정말 저분이 아직도 성동복지관을 너무도 아끼시고 애정을 가지고 계시는구나 하는 그 마음이 전해졌다. 26년 전의 일들을 아직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계시다는 것은, 책임감과 지키고자하는 의무감, 성동복지관을 향한 진정한 사랑임을...  

​끝으로 성동복지관에 바라는 점은 “지나온 25년처럼 앞으로도 전국에서 가장 잘 운영되어지는 복지관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하셨다.

관장수녀님께서 한 말씀 하셨다.
‘2016년 늦여름쯤 제가 복지관을 라운딩 하는데 낯익은 한분이 복지관을 둘러보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정년을 앞둔 김 재윤님이셨습니다. 그때 너무나 고맙고 반가웠습니다. 김 재윤님의 공직생활 마무리를 복지관을 방문하여 둘러보시는 것으로 선택 하셨다는 것은 성동복지관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이니까요. 감사합니다.’

 25년을 돌아보면 김 재윤님의 복지 마인드가 성동복지관의 주춧돌이 되었고 이것이 계기인지는 몰라도 당신도 사회복지를 공부하시고 사회복지를 실천하며 함께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복지관이 착공되고 등록 장애인 전수 욕구조사를 하면서 간직했던 많은 기억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젊은 수녀로 이곳 성동복지관 개관 멤버로 시작했지만 이제는 몇 년 후면 정년을 앞 둔 노년(?)이다. 개관 당시 주무관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시 한 번 그때의 열정이 살아나는 것 같았고 이 마음으로 남은 소임을 충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하였다.

“김 재윤님!
우리 성동복지관의 영원한 팬으로 함께 나아가시죠!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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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동복지관 또는 복지관이라는 단어사용에 있어서 중복사용이 아닌 표현편의상 혼용되어 사용되어졌음에 이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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